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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보 아줌마'의 두부요리, 마파두부는 왜 널리 퍼졌을까?

  • sammy04
  • 04/17/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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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에는 한 나라의 사회 정치 경제가 은연중에 녹아 있다. 중국 음식도 예외가 아닌데 세계로 퍼진 중국 음식 속에는 현지의 문화와 역사까지 곁들어 있다. 지구촌 중국반점의 요리를 통해 중국 본색을 알아보고 세상을 들여다본다.

사천(四川)성에서 시작된 마파두부는 중국은 물론 세계 여러 나라에 골고루 퍼져 있다. 한국과 일본은 말할 것도 없고 미국과 유럽, 남미의 중국 음식점에도 있다.

당연히 현지의 입맛을 반영해 나라마다 맛에는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어쨌든 만두, 볶음밥과 함께 지구촌에 광범위하게 퍼진 중국 요리 중 하나다. 마파두부, 왜 이렇게 널리 퍼졌을까? 

마파두부가 세계 각지에서 사랑받는 기본적인 이유는 맛 때문일 것이다. 중국에서 말하는, 얼얼하고(麻) 맵고(辣) 산뜻하고(鮮) 향미가 있으며(香) 뜨거우면서(燙) 부드럽고(嫩) 농후하며(酥) 촉촉한(涃) 맛이 다 들어있다고 요란떨 것까지는 아니어도 나름 독특한 풍미가 있다.

이런저런 여러 이유에 더해 마파두부가 널리 퍼진 데는 중국에 불었던 역사의 광풍(狂風)도 큰 몫을 했다. 인생에 비유해 말하자면 사실 마파두부만큼 험난한 질곡을 견디며 버텨온 음식도 많지 않다.

 

 

 

'곰보 아줌마'의 두부요리, 마파두부는 왜 널리 퍼졌을까?

마파두부는 알고 있는 것처럼 사천성 성도(成都)에 살았던 곰보 아줌마가 만들어 팔았기에 생긴 이름이다. 마파라는 말 자체가 마(麻)는 중국어로 마마, 속칭 곰보라는 뜻이고 파(婆)는 부인, 아줌마, 할머니라는 뜻이다. 그래서 마파두부는 곰보 아줌마가 파는 두부가 된다.

마파두부는 시작부터가 기구했다. 진 씨라는 곰보 아줌마 남편이 사고로 사망했다. 생계가 막막해진 진 씨가 시누이와 함께 남편 동료를 상대로 두부에 고추와 화쟈오(花椒), 양고기와 고추기름을 섞어 맵고 얼얼한 두부요리를 만들어 팔았다. 청나라 말인 1862년 무렵이다. 곧이어 진 씨네 두부요리가 맛있다는 소문이 성도 시내에 퍼졌다.

1920년대 사천성 출신의 공산주의자이자 작가로 활동했던 곽말약(郭沫若)이 마파두부를 예찬하는 글을 쓰고 비슷한 시기에 등소평이 프랑스에서 활동할 당시 두부장사와 함께 마파두부를 만들어 팔았다고 한 것으로 미루어 1920년대에는 마파두부가 대중적인 음식으로 사천성 전체에 전파됐던 것으로 짐작된다. 

사천성의 지방 특산음식이었던 마파두부는 1930~40년대 중국 전역으로 알려졌는데 엉뚱하게도 일본과 깊은 관련이 있다. 북경의 노구교에서 발생한 중국군과의 충돌을 핑계 삼아 중일전쟁을 일으킨 제국주의 일본은 전쟁을 중국 전역으로 확대하면서 북경과 천진, 남경, 상해 등 대도시를 차례차례 공략했다.

이에 국민당 정부는 1938년 당시 수도를 남경에서 사천성 중경으로 옮겼고 고위 관료, 부자를 비롯해 수많은 피난민들이 임시 수도인 중경으로 몰려들었다. 그리고 전쟁을 피해 온 중경과 성도 등지에서 마파두부를 먹어 본 피난민들이 전선이 안정돼 고향으로 돌아가면서 값싸고 맛있는 마파두부 조리법도 중국 전역으로 퍼지게 됐다.

마파두부가 중국을 넘어 세계로 뻗어나간(?) 계기는 중국 공산화와 관련 있다. 제2차 대전이 끝난 후 중국은 국민당과 공산당이 국공내전을 벌이다 1949년 대륙이 공산화됐다. 그러자 관리와 자본가, 지주들이 타이완, 홍콩을 비롯해 해외로 빠져나갔는데 이들을 따라간 요리사와 피난민들이 현지에 중국 음식점을 열며 마파두부가 세계적으로 퍼졌다. 진마

중국 밖에서 마파두부가 식객의 입맛을 사로잡을 때 중국 안에서 마파두부는 공산화로 인해 진짜 미친 바람을 맞았다. 민간 기업을 공기업과 합쳐 경영한다는 '공사합영(公私合營)'이라는 이름으로 번창했던 성도의 진마파두부 본점이 국유화됐다. 워낙 유명했기에 음식점을 없애지는 않고 상호를 그대로 유지했지만 소유권은 인정되지 않았다. 공산화된 중국에서 국영기업은 손익에 신경 쓸 필요가 없었기에 그저 이름만 이어갔다. 

하지만 그나마 이어갔던 명맥도 1966년 문화혁명의 시작과 함께 마파두부라는 이름마저 버려야 했다. 홍위병이 낡은 사상과 낡은 문화, 옛 풍속과 낡은 습관을 모조리 파괴해야 한다(破四舊)며 구시대 잔재의 청산을 외쳤을 때 애꿎게 마파두부도 그 대상이 됐다. 그 결과로 마파두부 이름이 '문승(文勝)두부'로 바뀌었는데 문화혁명의 승리를 기원하는 두부라는 뜻이다.

홍위병의 광기가 음식 하나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참고로 마파두부가 되살아난 것은 개혁개방 이후 사회주의 시장경제가 도입되면서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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